카테고리 없음 2024. 8. 25. 13:54

열린음악회 장혜지 나이 소프라노 프로필 노래

소프라노 장혜지 "미국 활동, 수많은 오디션 낙방의 결과"
2016. 9. 20.

소프라노 장혜지(34)는 국내 무대에서는 신인에 가깝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파우스트’가 국내 첫 데뷔 무대였다. 여기서 호평을 받은 그는 23, 25,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마술피리’의 파미나 역으로 출연한답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미국 무대에서 도드라진다. 2007년 동아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서울대 대학원 졸업 뒤 2008년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 스쿨오브뮤직을 거쳐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NEC)에서 전문연주자 과정을 밟았다. 지난해까지 미국 카네기홀 등에서 ‘마술피리’ ‘리골레토’ ‘피가로의 결혼’ ‘카르멘’ ‘사랑의 묘약’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2011년부터 프로 가수 생활을 했어요. 1년에 100일 정도만 집에 들어올 정도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오페라 무대에 섰어요.”라고 전했답니다.

미국에서 많은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건 살 떨리는 오디션의 결과물이었다.

“미국 오디션에서 정말 수없이 떨어져 봤죠. 처음에는 너무 많이 떨어져 제 실력에 대한 의문도 들었고, 좌절도 많이 했어요. 여전히 오디션에 떨어지면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정말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전했답니다.

그는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2013년 도밍고가 1993년에 창설한 국제 오페라 콩쿠르인 ‘오페렐리아 2013’ 사르수엘라(스페인 가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 도밍고가 설립한 ‘LA오페라 도밍고-콜번-스타인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차례 도밍고와 함께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도밍고가 저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아 영광이죠. 전설적인 성악가임에도 불구하고 곁에서 본 도밍고는 정말 주위 사람을 잘 챙겨주는 소탈한 사람이에요. 기억력도 좋아 같이 공연한 성악가와 스태프를 다 기억하고 이름을 정말로 불러줘요.”라고 전했답니다.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장혜지는 한국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은 마음에 지난해 짐을 싸 귀국했다. 국내에서 아직 그는 신인이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마술피리는 거의 매년 국내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에요. 제가 맡은 파미나 역은 소프라노라면 누구나 정말로 탐내는 역할이죠. 아마 많이 비교가 될 것 같아요. 차별화를 이뤄야죠. 목소리는 당연하고 외모도요. 요즘 많이 가꾸고 운동을 하거든요.(웃음)”라고 언급했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4. 8. 25. 12:51

야구선수 이상규 연봉 프로필 나이 키 성적 기록 고향

출생
1996년 10월 20일 (27세)
서울특별시 중구

학력
흥인초(중구 리틀) - 청원중 - 청원고

신체
185cm | 77kg
포지션
중간계투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15년 2차 7라운드 (전체 70번, LG)
소속팀
LG 트윈스 (2015~2023)
한화 이글스 (2024~)

병역
경찰청 의무경찰 수경 만기전역
연봉
4,400만원 (22.2%↑, 2024년)

"나보다 더 힘들었던 부모님께" 1553일 꾹 참은 눈물 터졌다…LG→한화 이상규의 야구는 이제 시작이다
-2024. 8. 25


한화 이글스 투수 이상규(28)가 꾹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이상규는 24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 6-6으로 맞선 9회말 무사 1루 위기에 구원 등판해 2이닝 21구 무피안타 1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치며 연장 10회 7-6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상규는 LG 트윈스 소속이던 2020년 5월 24일 잠실 kt 위즈전 이후 무려 1553일 만에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개인 통산 3승째이자 한화 이적 후 첫승이기도 했답니다.

이상규는 경기 후 중계방송사와 인터뷰에서 꾹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유니폼을 입고 버티기 위해 고생했던 지난 시간이 스쳐 갔는지 인터뷰 초반부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상규는 청원고를 졸업하고 2015년 신인드래프트 2차 7라운드 70순위로 입단했으나 2019년에야 처음 정식선수로 등록돼 1군 무대를 밟았다. 2019년에도 1군 단 한 경기에 출전해 ⅓이닝을 던진 게 전부였답니다.


2020년에는 작은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이상규는 그해 마무리투수 고우석(현 마이애미 말린스)의 무릎 수술로 생긴 빈자리를 대신했는데, 개막 첫 달인 5월 12경기에서 2승, 1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1.46을 기록하며 당시 류중일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6월부터 내리막길을 걸어 평균자책점 6.68로 시즌을 마쳤고,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시즌 동안 1군 15경기 등판에 그치며 아쉬움을 삼켰다. LG는 지난 시즌 뒤 2차 드래프트가 부활했을 때 이상규를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했고, 한화가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이상규를 지명하면서 정든 LG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올해 한화에서도 이상규는 마땅한 보직이 없었다. 1군과 2군을 여러 차례 오가며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1군에 등록된 47일 동안 11경기에 등판해 1승을 얻기까지 15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4.80을 기록했다. 한화에서는 꼭 성공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을 텐데, 마음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불안한 시간이 지속됐을 것이랍니다.

이상규는 그렇게 어렵게 약 4년 만에 승리투수가 된 뒤 방송 인터뷰에서 "무조건 팀이 이겨야 할 상황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 있게 내 공을 던지는 게 첫 번째라 생각했다. 자신 있게 준비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다 LG 시절 스승이었던 이상훈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칭찬에 울컥했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해설위원은 "투구 패턴에 깜짝 놀랐다. 잘했다. 투구 패턴이 빨라지고 자신감 있게 던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운드에서 어떤 생각으로 던졌나"라고 물었답니다.

이상규는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고 입을 연 뒤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한동안 울다 조금 감정을 추스른 뒤 "LG에서 육성선수까지 갔는데, 야구를 하고 싶어도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그런 시간이 있었다. 야구를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야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민 한화와 묵묵히 이상규를 지켜본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상규는 "한화 이글스로 2차드래프트 1라운드로 뽑아 주셔서 감사하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나를 너무 믿고 자신감 있게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다. 나보다 더 힘들었던 부모님께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하고 싶다. 엄마 아빠 항상 응원해 주시고 못해도 잘한다, 잘한다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답니다.

잠실 원정 응원석인 3루를 가득 채웠던 한화 팬들은 끝까지 경기장에 남아 눈물 흘리는 이상규를 응원했다. "이상규"라고 이름을 연호하며 짜릿한 역전승을 이끈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상규는 "이런 것(팬들의 응원)을 또 느끼니까 좋다. 그냥 진짜 던지라고 하면 던지고, 팬들한테 좋은 선수로 남고 싶다"며 한화에서 제대로 하고 싶었던 야구를 다시 하겠다는 의지를 한번 더 꺼내 보였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4. 8. 19. 09:54

알랭 들롱 로미 슈나이더 손녀 리즈 영화 사망원인 사인

'태양은 가득히' 프랑스 명배우 알랭 들롱 별세
-2024. 8. 18

'세기의 미남'으로 불린 프랑스 영화계의 전설 알랭 들롱이 건강 악화로 투병하다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8세였답니다.


프랑스 AFP통신 등은 들롱이 프랑스 루아레주(州) 두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세 자녀를 인용해 보도했다. 들롱은 2019년 뇌졸중과 심장 수술을 겪은 뒤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들롱은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파리 교외 소(Sceaux)에서 태어나 4세 때 부모의 이혼으로 교도관 가정에 입양됐다. 그는 다른 교도관의 자녀들과 함께 교도소 안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훗날 회고했다. 17세에 프랑스 해군에 입대했다가 1956년 불명예 제대했답니다.

이후 파리에서 잡일을 하며 지내던 들롱은 배우 장 클로드 브리알리와의 만남을 계기로 칸영화제를 방문, 그곳에서 미국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O. 샐즈닉의 미국 영화 출연을 제안받았다. 하지만 들롱은 프랑스에 머물기로 결심하면서 그해 이브 알레그레 감독의 '여자가 다가올 때'로 프랑스 영화계에 데뷔했다.

한편, 들롱은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를 연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프렌치 누아르' 전성시대를 열며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세대를 뛰어넘는 미남배우의 대명사로 사랑받으며 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 감독의 '이클립스'(1962),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1963),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사무라이'(1967), 자크 드레 감독의 '수영장'(1969) 등이 있답니다.


제작자로 40편을 제작하고 그중 2편은 직접 감독을 맡기도 했다. 프랑스·이탈리아 예술 영화 감독들과 주로 작업한 활동 초기와 달리 1990년대 들어서는 '카사노바의 귀환'(1992) 등 상업 영화에 출연했다. 1990년대 활동이 뜸해지며 2000년 은퇴를 선언했다. 이를 번복하고 2008년 코미디 영화 '아스테릭스: 미션 올림픽 게임'으로 복귀했고, 2017년 다시 은퇴를 선언했다.

배우로서의 성공과 별개로 삶의 족적은 스캔들과 혐오 발언 등으로 평탄하지 않았다. 1968년 그의 경호원 생활을 한 스테반 마르코비치의 사망 사건으로 구설에 휩싸였다. 들롱은 용의 선상에 올랐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온갖 의혹과 억측이 쏟아졌다. 독일 배우 로미 슈나이더 등 여배우들과 끊이지 않는 스캔들로도 유명했던 그는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 동거와 헤어짐을 반복했습니다.

프랑스 대표 극우 정치인인 장 마리 르펜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이 있고, 인종차별·여성혐오뿐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발언 및 동성 부부 입양에 반대해 크게 비난받았다. 2019년 칸영화제에서 명예황금종려상을 받을 당시엔 동성 부부의 자녀 입양을 반대한 그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은 이들이 명예황금종려상 취소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세 자녀가 들롱의 유산을 놓고 벌린 법정 분쟁에 휘말린 적도 있다.

지난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후에는 요양 생활을 해 왔다. 그의 아들 앙토니는 2022년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들롱이 향후 건강이 더 나빠질 경우 안*사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답니다.